박정희 실체 친일 행적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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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대~9대 대통령
- 박정희 일생
- 박정희 친일 행적
- 박정희 한일협정

 

- 제5대~9대 대통령


박정희는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입니다. 박정희는 제 5대 대통령입니다. 1963년 12월 제 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1978년 제 9대 대통령까지 약 16년동안 독재 정치를 한 대통령입니다.  

제 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도 투표가 아닌 516 군사정변으로 장면 내각을 전복한 후에 당선이 된 것입니다. 이후 3선 개헌과 10월 유신으로 장기집권을 하여 독재 정권을 유지했습니다. 

 

- 박정희 일생


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 경상북도 구미 출생입니다. 현재 박정희 생가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종로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의 총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박정희는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태어났습니다. 하급 군관인 효력부위를 지낸 농민 박성빈과 백남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박정희는 4남 2녀 중 막내입니다. 백남의는 박정희를 임신했을 때 당시 나이가 45살이었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부담이 되어 뱃속에 아이를 떼어내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박정희는 그대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 박정희 친일 행적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상반된 의견으로 대립됩니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선구자라 하여 좋은 평가를 받는가하면 독재자, 민주정치억압 등의 다양한 문제로 인해 부정적인 평가도 있습니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두고 지금도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그는 1939년 대구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에 혈서까지 써가면서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한 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친일 여부인데요. 친일인명사전에 담긴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인 신분으로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하고 그 당시 일본계로 시험을 치렀다고 합니다. 

 

자격 미달로 두차례나 군관학교에 떨어졌으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고 황제가 주는 금장시계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편입할 수 있었고 졸업한 뒤에는 일본군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 소위는 고등관으로 판사와 비슷한 등급이었고 일본 육사의 조선인 입교자는 매년 1명꼴로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고 합니다. 박 전 대통령이 근무한 곳도 일본군 히노 다케오 소장이 만든 부대인데 일본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사람들을 따로 모아 부대를 창설했다고 합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부대에서 인정받는 엘리트였고 단장 부관실의 을종부관을 맡았다고 합니다. 을종부관은 현재의 작전장교에 해당하는 중요 보직인데요. 한국사회에서 공인의 친일 여부는 지금까지 다뤄진 적이 없는데 박정희의 친일 문제도 평가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습니다. 

 

- 박정희 한일협정


일본제국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의 주역으로 일본 패망 후 태평양전쟁 A급 전범 명단에 오른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한 기시 노부스케는 정치계의 거물인데 박정희가 총재로 있던 민주공화당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며 한일협정의 조속한 진행을 추진하였습니다.

 

일제  강제징용자 보상 완전 해결, 일본군 위안부, 강제수탈에 대한 책임 종결, 독도에 대한 한국 일본의 공동 영유권 인정 등이 담긴 굴욕적인 한일협정이기에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박정희 실체를 파악한 후 재평가가 필요하고 그가 친일 행적을 한 것은 부정할 수없는 사실인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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